1980년대: 초기 정착 한인 가정들이 Blessed Sacrament 성당 미사에 참석하며 성가 봉사 시작
1984: 10월 16일 오타와 대교구의 독립된 한인 천주교 공동체로 공식 인정
1995 : 2월, '한국 성인 순교자 오타와 한인 천주교회' 명명 및 김진형 요한 신부 부임 (한국어 미사 개시, 안토니오 오스탄 신부와 로레인 라이발수녀의 도움으로 DesChatelets 체육관 사용)
1996: 2월, 안토니오 오스탄 신부 부임 및 St. Paul 대학교 성당으로 미사 처소 이동. 11월, St. Teresa 성당 주임신부의 배려로 오후 시간 한인 전용 미사 집전
1998: 1월, 구안당 (Antonio Egiguren) 신부 부임. 성경공부반, 레지오 마리에, 반모임, 꾸르실료 등 다양한 신심단체 활성화
1999: 하반기, 하이텍 기업 취업 이민자 유입으로 한인 공동체 급격히 성장
2000: 최정수 에스터 초대 사목회장 선출 및 대교구 총대리 페트릭 파워즈 몬시뇰과 면담하여 전용 성당 건물 지원 확약 확보
2001: 6월 23일, 로마 교회법상 정식 본당 승격 및 'Holy Korean Martyrs Parish' 명명. 마르셀 저베 몬시뇰 오타와 대주교의 집전으로 첫 미사 봉헌, 구안당 신부 초대 주임신부 임명, Argyle Avenue 성당 및 Gilmour Street 사제관 인수
2003: 2월, 김현철 그레고리오 신부 부임. 기도회, 성경공부, 청년회 등 신심활동 기반 강화 및 2009년 오타와 대교구로 이적
(1980년대 초 오타와에 정착한 몇몇 한인 천주교 가정들이 [Blessed Sacrament] 성당의 미사에 참석하며 본미사에서 성가봉사를 했다.
1984년 10월 16일 오타와 대교구는 공식적으로 교회법내에서 독립된 한인천주교 공동체의 존재를 인정했다.[맥도널드]신부 [오도넬]신부 및 [페레라]신부가 한인공동체의 영적지도를 해주셨다.
1987년 7월 13일 한인천주교 공동체는 국세청으로부터 자선단체로 정식등록되었다.
이 자선단체 등록은 공인회계사인 최정수 에스터가 성취시킴으로써 한인 천주교 공동체는 기부금에 대한 세금영수증을 발급할 수 있게 되었다.
이기간 동안 한인 천주교 공동체를 도와준 사람들은 상기한 신부외에 [코커리] 몬시뇰, [라스톤]신부, [김기홍]신부 및 [람스뎅]수녀들을 들 수 있다.
1995년 2월 오타와 대교구는 한인공동체를 [한국 성인 순교자 오타와 한인 천주교회]로 명명했다.[김진형 요한] 신부가 한인천주교 공동체를 핵임맡게 되었다.[김진형 요한]신부는 한인 천주교공동체를 [Blessed Sacrament] 성당으로부터 분리시켜 한국말로 미사를 추진했다.[안토니오 오스탄]신부와 [로레인 라이발]수녀의 도움으로 신부기숙사인 [DesChatelets]의 체육관에서 한국말로 미사를 하게 되었다.[김진형요한] 신부가 박사과정을 위해 로마로 떠난후 1996년 2월 [안토니오 오스탄]신부가 한인공동체를 맡게 되었다.[안토니오 오스탄]신부는 [St.Paul] 대학교의 성당으로 옮겨 미사를 집전했다.
1996년 11월에는 [St. Teresa]성당에서 오후에 한인들만의 미사를 집전하게에 이르렀다.
St. Teresa 주임신부인 [가해간]신부의 배려에 의한 것이다.
1998년 1월 작은형제회 소속 스페인계 [구안당, Antonio Egiguren]신부가 [St. Paul]대학교에서 종교윤리학 석사과정을 위해 오타와에 도착했고,[안토니오 오스탄]신부에 이어 한인 천주교 공동체를 맡게 되었다.
한국에서 9년이상 선교활동에 종사했던 [구안당]신부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으며, 한인공동체의 많은 신심단체를 활성화시켰다.
성경공부반, 레지오 마리에,반모임, 꾸르실료운동 등이 그 예이다.
2000년 10월 31일 사목회장 선거에서 공인회계사인 [최정수에스터]가 선출되었다.[St. Teresa] 성당을 빌려 미사와 제반 신심활동을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제약이 있었다.
새 사목회장인 최에스터는 구안당신부와 함계 2000년 12월 5일 오타와 대교구의 총대리인 [페트릭 파워즈] 몬시뇰과 면담을 해서
나날이 증가하는 한인천주교 신자와 제반 신심활동을 할 수 있는 건물을 구입하는데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.
1999년 하반기부터 한인천주교 공동체는 오타와의 하이텍에 취직되어 오는 새이민가족들로 급격히 성장하게 되었다.
성장하는 천주교 인구와 활발한 신심활동을 하기 위해 건물의 필요성을 그 자리에서 총대리는 인정하고,
한인공동체에 성당을 주겠노라는 기적같은 대답을 해주었다.
오타와 대교구는 지난 일년 동안 신자가 줄어가는 불란서 계통의 몇개의 본당을 연구 검토했는데,
그 중의 하나를 한인공동체에 주게 된 것이다. 그것이 바로 성당이다.
한인공동체는 로마로부터 법회법에 의해 정식 본당이 되었고,Holy Korean Martyrs Parish (한국 순교성인 천주교회)로 명명받고
2001년 6월 23일 [오타와 대주교, 마르셀 저베] 몬시뇰의 집전으로 [패트릭 파워즈]몬시뇰 등 많은 신부가 함께 첫미사를 봉헌했다.
그 당시 20년 전 몇 가정이 모여 믿음을 나누었던 한인공동체는 이제 정식본당으로 발족하게 되었고,
초대 본당 주임신부로 [구안당]신부를 임명했다.[Argyle Avenue]의 성당과 함께 523 Gilmour Street 에 위치한 사제관도 함께 받게 되어 구안당신부가 사제관으로 옮겼다.
2개월 동안 성당과 사제관 보수 공사를 마친후 [구안당]신부는 벨지움의 [Leuben]대학교에서 박사과정 이수차 2001년 9월 1일 이임하고
2001년 10월 부산교구로부터 [박명제 베네딕토]신부가 부임했다.
2002년 2월 20일 [박명제 배네딕토]신부후임으로 부산교구의[김승주 요한 크리스토모]신부가 부임했다.
2002년 8월 김승주 신부는 미국 포틀랜드성당으로 떠났고,
2003년 2월 20일 온타리오주 [해밀턴]본당 주임신부였던 [김현철 그레고리오]신부가 부임했다.
김현철신부는 기도회, 반모임, 성경공부, 바오로회, 요셉마리아회,청년회 등 제반 신심활동의 공고한 기반을 닦아놓았다.
2009년 1월 1일부로 부산교구 소속이었던 [김현철]신부는 오타와 대교구로 이적이 되었다.
2012년 3월 1일부터 2013년 1월 31일까지 안식년을 가지며, 후임으로 대만의 [하용국 세례자요한]신부가 부임했다.)